Conditioned Place Preference is a way of finding out what animals want. Researchers train them to associate one place with an experience such as food or a loud noise and another place with something completely different, usually where nothing happens. The two places are made obviously different to make it as easy as possible for the animal to associate each place with what happened to it there. The animal's preference for being in one place or another is measured both before and after its experiences in the two places. If there is a shift in where the animal chooses to spend its time for the reward, this suggests that it liked the experience and is trying to repeat it. Conversely, if it now avoids the place the stimulus appeared and starts to prefer the place it did not experience it, then this suggests that it found the stimulus unpleasant. For example, mice with cancer show a preference for the place where they have been given morphine, a drug used to relieve pain, rather than where they have received saline whereas healthy mice developed no such preference. This suggests that the mice with cancer wanted the morphine.
조건부 장소 선호도는 동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하나의 방법이다. 연구자들은 그것들이 한 장소를 음식이나 시끄러운 소리와 같은 경험과 연관시키고 또 다른 장소를 완벽히 다른 어떤 것과 연관시키도록 훈련시키는데 대개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두 장소는 그 동물이 각 장소를 거기에서 그것에게 일어난 일과 연관시키는 것을 가능한 한 쉽게 만들기 위해 명백히 다르게 만들어진다. 한 장소나 다른 장소에 있는 것에 대한 그 동물의 선호도는 두 장소에서 경험하기 전과 후에 모두 측정된다. 만약 동물이 보상을 위해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선택하는지에 변화가 있다면, 이것은 그것이 그 경험을 좋아했고 그것을 반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반대로, 만약 그것이 이제 자극이 나타났던 장소를 피하고 그것이 그것을 경험하지 않았던 장소를 선호하기 시작한다면, 그러면 이것은 그것이 그 자극을 불쾌하게 느꼈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암에 걸린 쥐가 식염수를 받아 왔었던 곳보다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사용되는 약인 모르핀이 주어졌었던 장소에 대한 선호를 보여 준 반면, 건강한 쥐는 그러한 선호가 생기지 않았다. 이것은 암에 걸린 쥐가 그 모르핀을 원했음을 시사한다.
Near the equator, many species of bird breed all year round. But in temperate and polar regions, the breeding seasons of birds are often sharply defined. They are triggered mainly by changes in day length. If all goes well, the outcome is that birds raise their young when the food supply is at its peak. Most birds are not simply reluctant to breed at other times but they are also physically incapable of doing so. This is because their reproductive system shrinks, which helps flying birds save weight. The main exception to this rule are nomadic desert species. These can initiate their breeding cycle within days of rain. It's for making the most of the sudden breeding opportunity. Also, different species divide the breeding season up in different ways. Most seabirds raise a single brood. In warm regions, however, songbirds may raise several families in a few months. In an exceptionally good year, a pair of House Sparrows, a kind of songbird, can raise successive broods through a marathon reproductive effort.
적도 근처에서, 새의 많은 종들은 일 년 내내 번식한다. 하지만 온대와 극지방에서는 새들의 번식기들이 대개 뚜렷하게 정해진다. 그것들은 주로 낮의 길이의 변화에 의해 촉발된다. 만약에 모든 것이 잘 진행된다면, 결과는 새들이 먹이 공급이 최고조에 이를 때 새끼들을 기르는 것이다. 대부분의 새들은 다른 때에 번식하기를 단지 꺼리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신체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왜냐하면 그들의 번식 기관이 줄어들기 때문이고, 이 사실은 나는 새들이 몸무게를 줄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유목성 사막 종은 이 규칙의 주요 예외이다. 이들은 비가 오는 날들에 번식 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번식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다른 종들은 번식 기간을 다른 방식으로 나눈다. 대부분의 바닷새들은 한 무리의 함께 태어난 새끼를 기른다. 그러나, 따뜻한 지역에서는, 명금(鳴禽)들이 몇 달 안에 여러 자녀들을 기를 수도 있다. 유난히 좋은 해에는 명금(鳴禽)의 한 종류인 참새 한 쌍은 마라톤과 같은 번식 노력을 통해 잇따라 태어난 여러 무리의 함께 태어난 새끼들을 기를 수 있다.
One factor that may hinder creativity is unawareness of the resources required in each activity in students' learning. Often students are unable to identify the resources they need to perform the task required of them. Different resources may be compulsory for specific learning tasks, and recognizing them may simplify the activity's performance. For example, it may be that students desire to conduct some experiments in their projects. There must be a prior investigation of whether the students will have access to the laboratory, equipment, and chemicals required for the experiment. It means preparation is vital for the students to succeed, and it may be about human and financial resources such as laboratory technicians, money to purchase chemicals, and equipment for their learning where applicable. Even if some of the resources required for a task may not be available, identifying them in advance may help students' creativity. It may even lead to changing the topic, finding alternative resources, and other means.
창의성을 방해할 수도 있는 한 가지 요소는 학생들의 학습에서 각 활동에 요구되는 자원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것이다. 종종 학생들은 그들에게 요구되는 과제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들을 식별할 수 없다. 여러 가지의 자원들이 특정 학습 과제들에 대해 필수적일 수 있어서 그것들을 인식하는 것은 활동의 수행을 평이하게 해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프로젝트에서 어떤 실험을 수행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학생들이 실험에 요구되는 실험실, 장비, 그리고 화학 물질에 접근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사전 조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학생들이 성공하기 위해 준비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의 학습을 위해 적용할 수 있는 경우에 그것은 실험실 기술자, 화학 물질 구입 자금, 그리고 장비와 같은 인적 그리고 재정적 자원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과제에 요구되는 자원들 중 일부가 이용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전에 그것들을 식별하는 것은 학생들의 창의성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심지어 주제 변경, 대체 자원들 찾기,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All translators feel some pressure from the community of readers for whom they are doing their work. And all translators arrive at their interpretations in dialogue with other people. The English poet Alexander Pope had pretty good Greek, but when he set about translating Homer's Iliad in the early 18th century he was not on his own. He had Greek commentaries to refer to, and translations that had already been done in English, Latin, and French ─ and of course he had dictionaries. Translators always draw on more than one source text. Even when the scene of translation consists of just one person with a pen, paper, and the book that is being translated, or even when it is just one person translating orally for another, that person's linguistic knowledge arises from lots of other texts and other conversations. And then his or her idea of the translation's purpose will be influenced by the expectations of the person or people it is for. In both these senses every translation is a crowd translation.
모든 번역가들은 그들이 대상으로 작업하고 있는 독자들의 공동체로부터 약간의 압박을 느낀다. 그리고 모든 번역가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그들의 해석에 도달한다.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그리스어를 꽤 잘했지만, 18세기 초에 호머의 'Iliad'를 번역하는 것에 대해 착수했을 때 그는 혼자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참고할 그리스어 해설과 이미 영어, 라틴어, 프랑스어로 된 번역본을 가지고 있었고, 물론 사전도 가지고 있었다. 번역가들은 항상 한 가지 이상의 원문을 활용한다. 심지어 번역 현장이 하나의 펜, 종이, 그리고 번역 중인 책을 가진 단 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구두로 번역 중일 때에도, 그 사람의 언어적 지식은 많은 다른 텍스트와 다른 대화에서 발생한다. 그러고 나서 번역의 목적에 대한 그 또는 그녀의 생각은 이것의 대상이 되는 사람 또는 사람들의 기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 두 가지 의미에서 모든 번역은 군중 번역이다.
Some people argue that there is a single, logically consistent concept known as reading that can be neatly set apart from everything else people do with books. Is reading really that simple? The most productive way to think about reading is as a loosely related set of behaviors that belong together owing to family resemblances, as Ludwig Wittgenstein used the phrase, without having in common a single defining trait. Consequently, efforts to distinguish reading from nonreading are destined to fail because there is no agreement on what qualifies as reading in the first place. The more one tries to figure out where the border lies between reading and not-reading, the more edge cases will be found to stretch the term's flexible boundaries. Thus, it is worth attempting to collect together these exceptional forms of reading into a single forum, one highlighting the challenges faced by anyone wishing to establish the boundaries where reading begins and ends. The attempt moves toward an understanding of reading as a spectrum that is expansive enough to accommodate the distinct reading activities.
몇몇 사람들은 사람들이 책을 가지고 하는 모든 다른 행동들로부터 깔끔하게 분리될 수 있는, 읽기로 알려진 유일하고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는 개념이 있다고 주장한다. 읽기는 정말로 그렇게 단순할까? 읽기에 대해 생각하는 가장 생산적인 방식은 하나의 명백한 특성을 공통적으로 가지지 않은 채 Ludwig Wittgenstein이 그 어구를 사용한 것처럼 가족 유사성 때문에 함께 속하게 되는 헐겁게 연결된 행동의 묶음으로서이다. 결론적으로, 읽기와 읽기가 아닌 것을 구분하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는데, 왜냐하면 애초에 무엇이 읽기로서의 자격을 주는가에 대한 동의가 없기 때문이다. 읽기와 읽기가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많은 특이 사례들이 그 용어의 유연한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외적인 읽기의 형태들을 모두 함께 하나의 토론의 장으로 모으려는 시도는 해 볼 가치가 있으며, 그 토론의 장은 어디서 읽기가 시작되고 끝나는가에 대한 경계를 정하기를 원하는 누구나에 의해 마주하게 될 어려움들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한 시도는 별개의 읽기 활동들을 다 수용할 만큼 충분히 광범위한 스펙트럼으로서 읽기를 이해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Weber's law concerns the perception of difference between two stimuli. It suggests that we might not be able to detect a 1-mm difference when we are looking at lines 466 mm and 467 mm in length, but we may be able to detect a 1-mm difference when we are comparing a line 2 mm long with one 3 mm long. Another example of this principle is that we can detect 1 candle when it is lit in an otherwise dark room. But when 1 candle is lit in a room in which 100 candles are already burning, we may not notice the light from this candle. Therefore, the Just-noticeable difference (JND) varies as a function of the strength of the signals. For example, the JND is greater for very loud noises than it is for much more quiet sounds. When a sound is very weak, we can tell that another sound is louder, even if it is barely louder. When a sound is very loud, to tell that another sound is even louder, it has to be much louder. Thus, Weber's law means that it is harder to distinguish between two samples when those samples are larger or stronger levels of the stimuli.
베버의 법칙은 두 자극 사이의 차이에 대한 감지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466mm와 467mm 길이인 선들을 볼 때 1mm의 차이를 감지할 수 없지만, 우리가 2mm 길이와 3mm 길이인 선을 비교할 때는 1mm의 차이를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원리의 또 다른 예는 촛불이 켜지지 않았으면 어두웠을 방안에 하나의 촛불이 켜졌을 때 이것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100개의 촛불이 이미 타고 있는 방에 하나의 촛불이 켜졌을 때, 우리는 이 촛불의 빛을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겨우 알아차릴 수 있는 차이(JND)는 신호의 세기에 대한 함수에 의해 달라진다. 예를 들어, JND는 훨씬 더 작은 소리에 대한 것보다 매우 큰 소음에 대해 더 크다. 한 소리가 매우 약할 때, 우리는 그것이 간신히 더 클지라도, 또 다른 소리가 더 크다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어떤 소리가 매우 클 때, 다른 소리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그 소리는 훨씬 더 커야 한다. 그러므로, 베버의 법칙은 그 표본들이 자극의 수준이 더 크거나 강할 때 두 표본을 구별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Any new resource (e.g., a new airport, a new mall) always opens with people benefiting individually by sharing a common resource (e.g., the city or state budget). Soon, at some point, the amount of traffic grows too large for the commons to support. Traffic jams, overcrowding, and overuse lessen the benefits of the common resource for everyone ─ the tragedy of the commons! If the new resource cannot be expanded or provided with additional space, it becomes a problem, and you cannot solve the problem on your own, in isolation from your fellow drivers or walkers or competing users. The total activity on this new resource keeps increasing, and so does individual activity; but if the dynamic of common use and overuse continues too long, both begin to fall after a peak, leading to a crash. What makes the "tragedy of commons" tragic is the crash dynamic ─ the destruction or degeneration of the common resource's ability to regenerate itself.
어떤 새로운 자원(예를 들어, 새로운 공항, 새로운 쇼핑센터)은 항상 공동의 자원(예를 들어, 시 또는 주 예산)을 공유함으로써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이익을 얻으면서 시작된다. 곧, 어느 시점에서, 교통량은 '공유지'가 견디기에 너무 커진다. 교통 체증, 과밀, 그리고 과도한 사용은 모두를 위한 공유 자원의 혜택을 줄이는데, 이것은 즉 공유지의 비극이다! 이 새로운 자원에 대한 총활동은 계속 증가하고, 개인 활동도 증가한다. 그러나 만약 공동 사용과 과도한 사용의 역학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둘 다 정점 이후에 떨어지기 시작하고, 몰락으로 이어진다. '공유지의 비극'을 더 비극적이게 만드는 것은 몰락 역학, 즉 그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있는 공동 자원의 능력의 파괴 또는 퇴보이다.
Theoretically, our brain would have the capacity to store all experiences throughout life, reaching the quality of a DVD. However, this theoretical capacity is offset by the energy demand associated with the process of storing and retrieving information in memory. As a result, the brain develops efficient strategies, becoming dependent on shortcuts. When we observe a face, the visual image captured by the eyes is highly variable, depending on the point of view, lighting conditions and other contextual factors. Nevertheless, we are able to recognize the face as the same, maintaining the underlying identity. The brain, rather than focusing on the details of visualization, creates and stores general patterns that allow for consistent recognition across diverse circumstances. This ability to match what we see with general visual memory patterns serves as an effective mechanism for optimizing brain performance and saving energy. The brain, being naturally against unnecessary effort, constantly seeks to simplify and generalize information to facilitate the cognitive process.
이론적으로는 우리의 뇌는 DVD의 품질에 도달할 정도로, 삶의 모든 경험들을 저장할 수 있는 수용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상의 수용력은 기억에 정보를 저장하고 상기하는 과정과 관련된 에너지 수요로 인해 상쇄된다. 그 결과, 뇌는 효율적인 전략들을 수립하고, 지름길에 의존하게 된다. 우리가 얼굴을 관찰할 때, 눈에 의해 포착되는 시각적 이미지는 시점, 조명 조건 및 기타 상황적 요인들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근본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얼굴을 같은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뇌는 시각화의 세부 사항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상황들에서 일관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일반적인 패턴을 생성하고 저장한다. 우리가 보는 것과 일반적인 시각 기억 패턴을 일치시키는 이 능력은 뇌의 수행을 최적화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효과적인 기제로 작용한다. 불필요한 노력에 자연스럽게 대항하는 뇌는 인지 과정을 돕기 위해서 끊임없이 정보를 단순화하고 일반화하는 것을 추구한다.
Where scientific research is concerned, explanatory tales are expected to adhere closely to experimental data and to illuminate the regular and predictable features of experience. However, this paradigm sometimes conceals the fact that theories are deeply loaded with creative elements that shape the construction of research projects and the interpretations of evidence. Scientific explanations do not just relate a chronology of facts. They construct frameworks for systematically chosen data in order to provide a consistent and meaningful explanation of what is observed. Such constructions lead us to imagine specific kinds of subject matter in particular sorts of relations, and the storylines they inspire will prove more effective for analyzing some features of experience over others. When we neglect the creative contributions of such scientific imagination and treat models and interpretive explanations as straightforward facts ─ even worse, as facts including all of reality ─ we can blind ourselves to the limitations of a given model and fail to note its potential for misunderstanding a situation to which it ill applies.
과학 연구에 관해서는, 설명하는 이야기들이 실험의 데이터에 엄밀히 충실할 것으로 기대되고 경험의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특징들을 밝힐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러한 패러다임은 때때로 이론들이 연구 프로젝트의 구성과 증거의 해석을 형성하는 창의적인 요소들로 철저히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감춘다. 과학적 설명들은 단순히 사실들의 연대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관찰된 것에 대한 일관적이고 의미 있는 설명을 제공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선택된 데이터에 대한 틀을 구축한다. 그러한 구성들은 우리가 특정한 유형의 관계에서 구체적인 종류의 주제를 상상하도록 하며, 그것들이 고취하는 줄거리는 다른 것들보다 경험의 일부 특징을 분석하는 데 더 효과적일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과학적 상상의 창의적 기여를 무시하고 모델과 해석적 설명을 단순한 사실, 훨씬 더 심하게는 현실을 전부 포괄하는 사실로 간주할 때, 우리는 주어진 모델의 한계에 대해 우리 스스로를 눈멀게 하며 그것이 잘못 적용되는 상황에 대해 오해할 가능성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We encounter contrary claims about the relation of literature to action. Theorists have maintained that literature encourages solitary reading and reflection as the way to engage with the world and thus counters the social and political activities that might produce social change. At best it encourages detachment or appreciation of complexity, and at worst passivity and acceptance of what is. But on the other hand, literature has historically been seen as dangerous: it promotes the questioning of authority and social arrangements. Plato banned poets from his ideal republic because they could only do harm, and novels have long been credited with making people dissatisfied with their lives and eager for something new. By promoting identification across divisions of class, gender, and race, books may promote a fellowship that discourages struggle; but they may also produce a keen sense of injustice that makes progressive struggles possible. Historically, works of literature are credited with producing change: Uncle Tom's Cabin, a best-seller in its day, helped create a revulsion against slavery that made possible the American Civil War.
우리는 문학과 행동의 관계에 대한 상반된 주장들과 마주한다. 이론가들은 문학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법으로써 고독한 독서와 성찰을 장려하고 따라서 사회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활동들에 거스른다고 주장해 왔다. 기껏해야 이것은 단절 또는 복잡성에 대한 인정을, 최악의 경우 수동성과 있는 그대로에 대한 수용을 조장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문학은 역사적으로 권위와 사회적 합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조장하므로 위험하다고 여겨져 왔다. 플라톤은 그들이 해를 끼치는 것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이상적인 공화국으로부터 시인들을 추방했고, 소설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에 불만을 품게 만들고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하도록 하는 것으로 오랫동안 믿어져 왔다. 계급, 성별, 그리고 인종의 경계를 넘어 동일시를 촉진함으로써, 책들은 투쟁을 단념시키는 동료 의식을 장려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들은 또한 진보적인 투쟁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강한 불의의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 역사적으로, 문학 작품은 변화를 만드는 것으로 믿어져 왔는데 그 시대의 베스트셀러인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미국 남북 전쟁을 가능하게 만든 노예제에 대한 혐오감을 조성하는 것을 도왔다.
According to Hobbes, man is not a being who can act morally in spite of his instinct to protect his existence in the state of nature. Hence, the only place where morality and moral liberty will begin to find an application begins in a place where a sovereign power, namely the state, emerges. Hobbes thus describes the state of nature as a circumstance in which man's life is "solitary, poor, nasty, brutish and short". It means when people live without a general power to control them all, they are indeed in a state of war. In other words, Hobbes, who accepted that human beings are not social and political beings in the state of nature, believes that without the power human beings in the state of nature are "antisocial and rational based on their selfishness". Moreover, since society is not a natural phenomenon and there is no natural force bringing people together, what will bring them together as a society is not mutual affection according to Hobbes. It is, rather, mutual fear of men's present and future that assembles them, since the cause of fear is a common drive among people in the state of nature.
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하려는 그의 본능을 무릅쓰고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도덕과 도덕적 자유가 적용을 찾기 시작하는 유일한 곳은 군림하는 권력, 즉 국가가 출현하는 곳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홉스는 자연 상태를 인간의 삶이 '고독하고, 가난하며, 불결하고, 잔인하고, 짧은' 상황으로 묘사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들 모두를 통제할 일반적인 권력 없이 살아갈 때, 그들은 실로 전쟁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임을 의미한다. 즉 다시 말해, 자연 상태에 있는 인간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홉스는 그 권력이 없이 자연 상태에 있는 인간은 '이기심에 기초해 반사회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믿는다. 게다가, 사회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며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자연적인 힘도 없기 때문에, 홉스에 따르면 그들을 사회로 함께 모이게 하는 것은 상호 간의 애정이 아니다. 두려움으로부터의 동기가 자연 상태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공통된 추진력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을 모으는 것은 인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상호 간의 두려움이다.
There is research that supports the idea that cognitive factors influence the phenomenology of the perceived world. Delk and Fillenbaum asked participants to match the color of figures with the color of their background. Some of the figures depicted objects associated with a particular color. These included typically red objects such as an apple, lips, and a symbolic heart. Other objects were presented that are not usually associated with red, such as a mushroom or a bell. However, all the figures were made out of the same red-orange cardboard. Participants then had to match the figure to a background varying from dark to light red. They had to make the background color match the color of the figures. The researchers found that red-associated objects required more red in the background to be judged a match than did the objects that are not associated with the color red. This implies that the cognitive association of objects to color influences how we perceive that color.
인지적 요인들이 지각된 세계의 현상학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연구가 있다. Delk와 Fillenbaum은 참가자들에게 형상들의 색상을 배경 색상과 맞추도록 요청했다. 몇몇 형상들은 특정 색상과 연관된 물체들을 묘사했다. 그것들은 사과, 입술, 상징적인 하트 모양과 같이 전형적인 빨간색 물체를 포함했다. 버섯이나 종과 같이 빨간색과 일반적으로 연관이 되지 않는 다른 물체들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모든 형상들은 동일한 다홍색 판지로 만들어졌다. 그러고 나서 참가자들은 그 형상을 진한 빨간색에서 연한 빨간색까지 다양한 배경색과 맞춰야 했다. 그들은 배경색이 형상들의 색과 일치하게 해야 했다. 연구자들은 빨간색과 연관된 물체들이 빨간색과 연관이 없는 물체가 그러한 것보다 배경과 일치한다고 판단되기 위해서 배경에서 더 빨간 색을 요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색과 물체의 인지적 연관성이 우리가 그 색을 어떻게 지각하는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함의한다.
One of the best pieces of advice I got when my son was really little was from his nursery school teacher, who told parents to pretend that we liked bugs and worms. The reason: my son's class was doing an earth science unit, and she had found that almost all kids love to dig and play with the dirt. That is, until, at pickup time, their parents scream, "Ewwwww, worms are gross!"- which often squashes their interest in biology. Kids get many of their early ideas and prejudices from us. So how you feel about your own work - and how you talk about it in front of your kid - affects how she views work in general. If you enjoy your job, say so. Even if you don't love your job, you can probably say that you love having one. It's important to relay the idea that a job is something to take pride in.
나의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내가 받은 가장 좋은 조언 중 하나는 그의 보육원 선생님에게서 받은 것인데, 그 선생님은 부모들에게 작은 곤충과 벌레를 좋아하는 척하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내 아들의 학급은 지구 과학 단원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흙을 파서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해, (아이들을) 태우러 오는 시간에 그들의 부모님들이 "웩, 벌레는 역겨워!"라고 비명을 지를 때까지는 그랬는데, 그것은 흔히 생물학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를 꺾는다. 아이들은 그들의 어린 시절의 생각과 편견의 많은 부분을 우리에게서 얻는다. 그래서 여러분이 자신의 일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그리고 여러분의 아이 앞에서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는 아이가 일에 대해 전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여러분이 일을 즐긴다면 그렇게 말하라. 여러분이 일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일을 '갖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은 자부심을 가질 만한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Though there may be no perfect design, we can still speak of good design. We can admire the brilliant solution, appreciate the ingenious device, and enjoy the clever gadget. Imperfect as they may be, they represent the triumph of the human mind over the world of things, and the achievements of accomplished designers uplift the spirit of us all. The pole-vaulter who sets a new record is no less of a champion because he does not clear the next bar height. He had conceived and executed his run, the planting of his pole, and the arc of his body in the best way that he could for that meet, and for the time being, at least, his best is the best. We applaud what he did achieve, with the expectation that someday he or some other athlete may design a better pole or vaulting technique and so set a new record. That is the nature of design.
완벽한 디자인은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좋은 디자인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 훌륭한 해결책에 감탄하고 그 독창적인 도구를 감상하고 그 기발한 장치를 즐길 수 있다. 그것들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들은 사물의 세계에 대한 인간 정신의 승리를 나타내며, 뛰어난 디자이너들의 업적은 우리 모두의 정신을 고양시킨다. 신기록을 세우는 장대높이뛰기 선수는 다음 높이의 바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은 챔피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달리기, (바닥에) 장대를 꽂는 것, 그리고 몸의 둥근 모양을 그 운동 경기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생각해 내고 실행했으며, 적어도 당분간은 그가 이룬 최고의 것은 최고이다. 언젠가 그 혹은 어떤 다른 선수가 더 나은 장대나 뛰어넘는 기술을 고안하고 그래서 신기록을 세울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우리는 그가 정말로 성취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그것이 디자인의 본질이다.
Instant and early conclusions, solutions, suggestions, and statements about "how we solved that in the past" are the enemies of good problem solving. The good is, most often, the enemy of the better. Defining the problem and taking action occur almost simultaneously for most people. The mentally agile survivor paradoxically puts more energy into playing with the problem mentally - defining more creatively. Voluminous research on problem solving shows conclusively that the more effort one puts into the front end of the problem-solving process, the easier it is to come up with a good solution. This doesn't mean being inactive. It means being highly cognitively active in defining the problem more rigorously.
'과거에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결했는가'에 대한 즉각적이고 빠른 결론, 해결책, 제안, 진술은 좋은 문제 해결의 적이다. 아주 자주, 좋은 것은 더 좋은 것의 적이다. 문제를 정의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정신적으로 민첩한 생존자는 역설적으로 (문제를) 더 창의적으로 정의하면서 문제를 정신적으로 만지작거리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문제 해결에 대한 방대한 연구는 사람들이 문제 해결 과정의 가장 앞부분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수록 좋은 해결책을 생각해 내기가 더 쉽다는 것을 단정적으로 보여 준다. 이것은 소극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문제를 보다 정확하게 정의하는 데 매우 인지적으로 적극적인 것을 의미한다.
Many of the technological innovations with the most profound impact on human society originated in settlements along trade routes, where a rich mix of different cultures ignited new ideas. For example, the printing press, which helped spread knowledge to all social classes, was invented by the German Johannes Gutenberg around 1440. This invention relied on several innovations from China, including paper and ink. Paper traveled along trade routes from China to Baghdad, where technology was developed for its mass production. This technology then migrated to Europe, as did water-based ink from China, which was modified by Gutenberg to become oil-based ink. We have the cross-fertilization of diverse cultures to thank for the printing press, and the same can be said for other important inventions.
인간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많은 혁신적인 기술은 교역로를 따라 들어선 촌락에서 생겨났는데, 그곳에서는 여러 다른 문화가 많이 뒤섞여 새로운 아이디어에 불을 붙였다. 예를 들어 모든 사회 계층에 지식을 전파하는 데 도움을 준 인쇄기는 1440년경 독일인 Johannes Gutenberg에 의해 발명되었다. 이 발명품은 종이와 잉크를 포함한 중국의 여러 혁신적인 기술에 의존했다. 종이는 중국에서 바그다드로 교역로를 따라 전해졌는데, 바그다드에서 그것의 대량 생산을 위한 기술이 개발되었다. 그러고 나서 이 기술은, Gutenberg에 의해 유성 잉크로 바뀐 중국의 수성 잉크와 마찬가지로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인쇄기에 대해서 감사해야 할 대상은 다양한 문화의 교류이고, 다른 중요한 발명품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When you watch a movie first on a large screen in the theater and then on a small video screen, do you see giants on the large screen and Lilliputians on the small screen? Of course not. As with color constancy, which makes us see colors as uniform despite variations, our perception is guided by size constancy, which means we perceive people and their environments as normal sized regardless of whether they appear in a long shot or a close-up on a large movie screen or a small video screen, or whether we are relatively close to or far away from the screen. So long as we know by experience how large or small an object should be, we perceive it as its normal size regardless of screen size, relative image size, or perceived object distance.
여러분이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영화를 처음 보고 그런 다음 작은 비디오 화면으로 보면, 여러분은 큰 화면에서 거인을 보고 작은 화면에서 소인국 사람을 보는가? 물론 아니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색상을 동일하게 보도록 만드는 색의 항등성처럼, 우리의 지각은 크기 항등성에 의해 지배되는데, 그것은 사람들과 환경이 먼 거리에서 촬영한 형태로 나타나든지 혹은 큰 영화 화면이나 작은 비디오 화면상에서 근접거리에서 촬영한 형태로 나타나든지 간에, 또는 우리가 그 화면으로부터 비교적 가깝든지 아니면 멀든지 간에 우리가 그것들을 정상적인 크기로 지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경험으로 한 물체가 얼마나 크거나 혹은 작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한, 우리는 그것을 화면 크기, 상대적인 이미지 크기, 혹은 지각된 물체의 거리에 관계없이 정상적인 크기로 지각한다.
Charles Sanders Peirce (pronounced purse), the founder of pragmatism, America's only unique philosophy, was born in Cambridge, Massachusetts. His father, Benjamin, was the leading mathematician of the day, and he took a special interest in his son's intellectual development. Under his direction Charles was reading college-level material, including logic, at age twelve, and Benjamin would challenge the boy with highly complex problems that Charles would solve on his own. Although his most significant education came from his father, Charles went on to attend Harvard University, where he received a Bachelor of Science in chemistry in 1863. Yet, he was not a successful student (he usually placed in the lower quarter of his class), partly because he showed scorn for his professors as inadequately qualified to teach him. This arrogance is likely the main reason Peirce lived a difficult life. He died in poverty at age seventy-four in the then-isolated town of Milford, Pennsylvania.
미국만의 독특한 철학인 실용주의의 창시자인 Charles Sanders Peirce('펄스'라고 발음됨)는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Benjamin은 그 당시 손꼽히는 수학자였고, 자신의 아들의 지적 발달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의 지도하에, Charles는 12살에 논리학을 포함한 대학 수준의 글을 읽고 있었고, Benjamin은 Charles가 자신의 힘으로 풀어내곤 했던 매우 복잡한 문제들로 아들의 도전 의식을 북돋우곤 했다. 그의 가장 중요한 교육이 아버지로부터 나오기는 했지만, Charles는 하버드 대학으로 진학했고, 그곳에서 1863년에 화학으로 이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성공적인 학생은 아니었다(그는 보통 자신의 학급에서 하위권에 위치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자신을 가르치기에 충분히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교수님들을 깔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만함이 Peirce가 힘겨운 삶을 살았던 주요 이유인 것 같다. 그는 74세에 당시에는 외딴 도시였던 펜실베니아 주의 밀포드에서 빈곤한 상태로 사망하였다.
If 100 people are interviewed about, say, whether they like a particular brand of peanut butter and it is found that 38 do, we are told that 38 percent of people like that brand. Of course this does not mean that everyone in the world was asked, but the researcher assumes that if 38 percent of the sample liked that brand then it is likely to reflect the opinion of people generally. However, crucial to this assumption is the size of the sample. If you asked just two people if they liked that brand of peanut butter and one did, that would be weak evidence that 50 percent of people liked it. You couldn't assume that the views of two people would match the whole population! Generally the larger the sample the more reliable the survey is likely to be. If the study doesn't say how many people were involved, be suspicious.
가령 특정 브랜드의 땅콩버터를 좋아하는지의 여부에 관해 100명의 사람을 인터뷰해서 38명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내면, 우리는 38%의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물론 이것이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연구자는 표본의 38%가 그 브랜드를 좋아했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의견을 전반적으로 반영할 것 같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이 추정에 중대한 것은 표본의 크기이다. 만약 여러분이 단지 두 사람에게만 그 브랜드의 땅콩버터를 좋아하는지 물어서 한 사람이 좋아한다면, 그것은 50%의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한다는 증거로는 취약할 것이다. 여러분은 두 사람의 견해가 전체 인구와 일치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표본이 클수록 조사의 신뢰도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 연구 논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했는지 나와 있지 않으면, 의심하라.
Take a close look at a computer chip sometime. You'll notice that it resembles a dense city in miniature, perhaps symbolizing our move toward an ever-more-compact and interactive world. In the same way that microchips are increasing in power by providing more communication pathways, we are seeing the power of direct people- to-people communication, and the collapse of traditional bureaucratic hierarchies. This frees us to communicate in far more, and more profound, ways. For example, a century ago, few people traveled outside their own county. Today, some kids have more friends around the world that they've met via the Internet than they do in their local neighborhoods and schools. That's because they have grown up with technologies of interactive communication we never imagined.
언젠가 컴퓨터칩을 자세히 보라. 여러분은 그것이 축소 된 크기의 밀집한 도시를 닮았으며, 아마도 훨씬 더 조밀하고 상호작용하는 세계를 향한 우리의 움직임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마이크로칩이 더 많은 의사소통 경로를 제공함으로써 힘을 증가시키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인 의사소통의 힘, 그리고 전통적인 관료주의적 계급제도의 붕괴를 보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더 깊은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자유롭게 해준다. 예를 들어, 한 세기 전에, 자신의 군 밖으로 여행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오늘날, 일부 아이들은 지역의 동네와 학교에서 가지는 친구들보다 인터넷을 통해 '만난' 더 많은 친구들을 전 세계에 갖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상호작용적 의사소통 기술을 가지고 자라났기 때문이다.
Research from New York University and Tel Aviv University has shown that you're more inclined to think creatively when you imagine yourself removed from a problem or situation. Imagining yourself in the mind of somebody else, for example, is a simple way to trick your brain into seeing things in new ways. The act of people watching is one way to do just that. As you watch strangers, you can imagine how they might handle a situation. That thought process allows for ideas that would otherwise be unrealistic or limited by your personal way of thinking. After all, you might not act a certain way, but a stranger could. Imagining how a stranger might act makes it possible for you to think of more radical and imaginative ideas than you might be used to, simply because it's not you acting them out, but someone else you're watching.
New York 대학교와 Tel Aviv 대학교의 연구는 여러분이 문제나 상황에서 벗어난 자신을 상상했을 때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여러분 자신이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여러분의 뇌를 속여 새로운 방식으로 상황을 보도록 하는 간단한 법이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행위는 단지 그것을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낯선 사람을 보면서 그들이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 상상할 수 있다. 그 사고 과정은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개인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비현실적이거나 제한적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허용한다. 결국, '여러분'은 어떤 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낯선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다. 낯선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하는 것은 여러분이 익숙한 것보다 더 급진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단순히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여러분이 보고 있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For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 (STEM) classes, empathy has a natural place. It is an integral part of teaching design thinking, which centers on applying creativity to realize and solve problems. In order to imagine or identify challenges to be addressed, students have to put themselves into the lives and circumstances of others. They have to ask themselves, "What is this person feeling?" "What is his situation like, and how can we make it better for him?" They use their insights from those reflections to address solution-based thinking. Through various processes (brainstorming, inquiry, etc.), they identify a specific way they can solve the problem. They design and test their prototype, still thinking about the ultimate user and making modifications with the user in mind.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 수업에서 공감은 당연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것은 디자인 사고를 가르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부분인데, 그것은 문제를 깨닫고 해결하는데 창의력을 적용하는 것에 초점을 둔다. 다루어야 하는 문제를 떠올리거나 찾아내기 위해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환경에 자신을 놓아보아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이 사람은 어떻게 느끼지?" "그의 상황은 어떻고, 우리가 어떻게 그를 위해 더 좋게 만들 수 있지?"를 물어야 한다. 그들은 해법 기반의 사고를 하기 위해 그러한 생각들로부터 얻은 통찰력을 활용한다. 다양한 과정들(브레인스토밍, 조사 등)을 통해 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특정 방법을 찾아낸다. 그들은 궁극적인 사용자를 생각하고 그 사용자를 마음에 담고 수정을 하면서, 자신들의 원형을 구안하고 시험해 본다.
Low-productivity firms are often located in industries where the demand is stagnant or falling. This is partly due to the fact that new plants do not need to be built to meet new demands, but it is also due to a human problem. Dying industries simply cannot be managed as efficiently as growing industries. Growing industries attract bright aggressive managers who want to advance rapidly with their companies. In dying industries promotions are few and far between. Smart young managers know that they should be avoided. Who wants a job where the basic problem is to decide who to fire each day and where new, exciting investments are not happening? In a dying industry everyone is out to protect what they have rather than to build something better.
저생산성 회사들은 수요가 침체되거나 감소하고 있는 산업에 종종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새로운 수요에 맞추기 위해 새로운 공장들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또한 인간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저물어 가는 산업은 절대로 성장하는 산업만큼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성장하는 산업들은 그들의 회사와 함께 빠르게 발전하기를 원하는 총명하고 공격적인 관리자들을 끌어들인다. 저물어 가는 산업에서는 승진이 흔치 않다. 영리한 젊은 관리자들은 그것들(저물어 가는 산업들)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기본적인 문제가 매일 누구를 해고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고 새롭고 흥미진진한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 직업을 누가 원하는가? 저물어 가는 산업에서 모든 사람들은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호하려고 애쓰고 있다.
There is an important reason to attract pollinators that has little to do with their pollination services and a lot to do with the fact that they are part of a food chain. In the natural world everything eats something else in order to survive. Those same insects that pollinate our flowers can also prey on a range of pest insects and help keep them under control. They are in turn prey for birds, frogs or lizards. The honeyeaters, for example, that pollinate our flowers while feeding on the nectar within them, also eat insects from under the bark of trees and might themselves become prey for larger birds. Lizards in the mulch eat a range of garden pests and might end up being eaten by magpies.
수분 활동과는 거의 관련이 없고 그들이 먹이사슬의 일부라는 사실과 관련이 많은 꽃가루 매개자를 끌어들여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자연계에서는 모든 것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어떤 것을 먹는다. 우리의 꽃을 수분시키는 그런 동종의 곤충들은 또한 다양한 해충들을 잡아먹고 그들을 통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들은 차례차례 새, 개구리, 도마뱀의 먹이가 된다. 예를 들어, 꽃 내부의 꿀을 먹으면서 꽃을 수분시키는 꿀 먹는 새들은, 또한 나무껍질 아래에서 곤충들을 잡아먹고 그들 자신은 더 큰 새들의 먹이가 될 수도 있다. 뿌리 덮개 안의 도마뱀들은 다양한 정원 해충을 먹고 있고 결국 까치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In an ideal world all arguments would be decided on their merits and not their presentation. But we aren't in an ideal world. There's no getting away from the fact that presentation of an argument is crucial. Advertising is all based on persuading you to buy a product that you would not otherwise buy, and most advertising is the triumph of spin over substance. Many people have won arguments, based on bad grounds, because they've made their points well. And many people with good points have lost their argument because they failed to make their case attractively.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모든 주장이 그것들의 표현이 아니라 그것들의 진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상적인 세상에 있지 않다. 주장의 표현이 중대하다는 사실을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광고는 여러분이 그렇지 않다면 [광고가 설득하지 않으면] 사지 않을 제품을 사도록 설득하는 것에 전적으로 기반을 두고 있으며, 대부분의 광고는 그럴듯한 의견 제시가 실체를 이기고 거둔 승리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잘 입증했기 때문에 불충분한 근거에 기반해서도 논쟁에서 이겼다. 그리고 훌륭한 주장을 가진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입증 하지 못했기 때문에 논쟁에서 졌다.
To illustrate both the advantages and disadvantages of an even partly iconographic writing, the Chinese script provides a good example. There is the large number of signs: 3,000 to 4,000 characters for everyday use, 50,000 for scholars studying the classical texts (as compared to the Latin alphabet which now uses some 26 signs). Why then has the Chinese script been so successful, lasting, apart from comparatively few minor remodelings, well over 4,000 years? Simply because as a concept script Chinese does not depend on the spoken language. This made it, throughout Chinese history, an ideal means of communication in an empire whose people spoke a large number of different dialects yet were all ruled by the same centre.
부분적으로나마 그림으로 보여 주는 글의 이점과 불리한 점을 모두 설명하기 위해, 중국 문자는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 글자의 많은 수가 있다: (지금 약 26개의 글자를 사용하는 라틴 알파벳과 비교했을 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글자는 3천 자에서 4천 자이고, 고전 텍스트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위한 글자는 5만 자가 있다. 그렇다면 왜 중국 문자는 4천 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비교적 극히 소수의 사소한 개조 외에 지속되면서 그토록 성공적이었을까? 그것은 표의문자로서 중국어는 구어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것(중국 문자)을 중국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이 수많은 서로 다른 방언을 사용하지만 동일한 중심에 의해 모두가 다스려졌던 제국에서 이상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만들었다.
There has been a lot of interest in the idea of emotional intelligence. Many people are not in touch with their emotions and feel incapable of expressing their feelings. The results everywhere are obvious and catastrophic. In part, this is the legacy of the academic illusion. Conventional education separates intelligence from feeling, and concentrates only on particular aspects of the first. This is why being highly educated is no guarantee of emotional intelligence. Yet there is an intimate relationship between knowing and feeling: how we feel is directly related to what we know and think. Creativity is not a purely intellectual process. It is enriched by other capacities and in particular by feelings, intuition and by a playful imagination.
감성 지능이라는 개념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깨닫지 못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고 느낀다. 도처에 있는 결과는 명백하고 비극적이다. 부분적으로, 이것은 학업이 초래한 착각이라는 유산이다. 관습인 교육은 지성과 감정을 구분하고 오직 전자의 특정한 측면에만 집중한다. 이런 이유로 고등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감성 지능을 보장하는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알고 느끼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즉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는 우리가 알고 있고 생각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창의성은 순전히 지적 과정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능력, 특히 감정, 직관에 의해 그리고 장난스러운 상상력에 의해 질이 높아진다.
The importance of experimental learning depends strongly on the nature of the activity: there are high-risk activities in which the agents have to limit their experiments because they could conflict with the "normal performance" that has to be achieved. Airline pilots or surgeons cannot learn in this way. Similarly, people managing a marshalling yard or regulating the flow of subway train traffic will avoid any type of experiment in the normal course of their work. The error element of their professional trial-and-error is rarely consequential at least insofar as outcomes can be rapidly assessed and methods adapted. The fact of being able to carry out this type of learning depends on the nature of the risk and the immediacy (or delay) of the effect. By contrast, a teacher can carry out educational experiments and a craftsman can look for new solutions to a particular problem during the production process. Thus, explicitly cognitive learning consists of a series of planned but weakly controlled experiments.
실험 학습의 중요성은 활동의 성격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즉, 달성해야 하는 '정상적인 성과'와 상충될 수 있기 때문에 담당자가 실험을 제한해야 하는 고위험 활동이 있다. 항공사 조종사나 외과 의사는 이런식으로 배울 수 없다. 마찬가지로, 철도 조차장(操車場)을 관리하거나 지하철 교통의 흐름을 조절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정상적인 업무 과정에서 어떤 형태의 실험도 피할 것이다. 대조적으로 교사는 교육 실험을 수행할 수 있고, 공예가는 생산 과정 동안 특정한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전문적인 시행착오의 오류 요소는 적어도 결과가 신속하게 평가되고 방법이 조정되는 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이러한 유형의 학습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위험의 성격과 효과의 신속성(또는 지연)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명백하게 인지적인 학습은 계획적이지만 약하게 통제되는 일련의 실험으로 구성된다.
Blocking can occur in diverse situations. Engaged in casual conversation, you block on a word in the middle of a sentence. Stage actors fear those relatively rare but embarrassing moments in a scene when they block on their lines. And students are afraid of the awful realization that they have blocked on an exam answer they studied diligently, and might even recall spontaneously after finishing the test. But blocking occurs most often with people's names. In surveys that probe different types of memory failures in everyday life, blocking on the names of familiar people invariably emerges at or near the top of the list. Name blocking is especially troublesome for older adults: the single biggest complaint of cognitive difficulties by adults past age fifty - by far - involves problems remembering the names of familiar people.
갑작스럽게 생각나지 않는 것은 다양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 여러분은 문장 중간에서 한 단어가 갑작스럽게 생각나지 않는다. 연극배우들은 무대에서 대사를 하는 중간에 갑작스럽게 생각나지 않는 비교적 드물지만 당혹스러운 그러한 순간들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부지런히 공부했던 시험 답안 작성 중에 갑작스럽게 생각나지 않았고 아마도 심지어 시험이 끝나고 난 다음 자연스럽게 기억나는 그런 끔찍한 실감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생각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이름에서 가장 자주 발생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종류의 망각을 조사한 연구에서, 친숙한 사람들의 이름이 갑작스럽게 생각나지 않는 것은 목록의 가장 위쪽이나 그 근처에서 항상 나타난다. 이름이 갑작스럽게 생각나지 않는 것은 나이가 더 많은 성인에게 특히 골치 아픈 일이다: 50세가 넘은 성인들의 인지적 어려움에 대한 단연코 가장 큰 유일한 불평은 친숙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A date or time by which the goal is to be accomplished should be specified. The presence or absence of a deadline is a critical attribute of any goal-setting exercise. Deadlines stimulate action, and the closer the deadline, the more motivation to act. The absence of a deadline makes the urgency of the goal indefinite and hence less motivating. For example, there are a disproportionately large number of plays during the last few minutes of a football game because the team that is behind faces a deadline for scoring more points or losing the game. Similar increases in activity occur toward the end of the trading period each day on the New York Stock Exchange. Think of your own behavior when a test date is rapidly approaching, and you begin to increase your preparation activities.
목표가 달성되어야 하는 기한인 날짜나 시간은 명시되어야 한다. 최종 기한의 유무는 모든 목표 설정 활동의 중요한 특성이다. 최종 기한은 행동을 자극해서, 최종 기한이 가까울수록 행동할 동기가 많아진다. 최종 기한이 없으면 목표의 긴급성 이 불명확해져서 동기를 덜 부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의 마지막 몇 분 동안 (전과 비교해서) 지나치게 많은 수의 플레이 동작이 생기는데, 그 이유는 지고 있는 팀이 더 많은 득점을 하지 않으면 경기에서 지게 되는 최종 기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뉴욕 증권 거래소에서 매일 거래 시간이 끝나갈 무렵에 활동의 비슷한 증가가 발생한다. 시험일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어서 여러분이 자신의 준비 활동을 늘리기 시작할 때 여러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라.
When you are busy creating a new habit, there is a pitfall you should know about, because if you don't, you will fail again and again and again. Let me illustrate it with an example. Suppose you want to learn a new move in tennis. In the beginning, will you get better or worse results with your new move? You will get worse results of course. So the result curve will go down and only after a certain amount of time will it become level and then your results may improve beyond your old habit. Okay, Now back to the starting point: the new move, will it cost more or less energy than the old move? It will cost more of course, it being a new move. After a while you get used to it, it becomes a habit, and it will cost less energy. So now let's look at the area between the downward curve of the results and the upward curve of the energy. Suppose you are at point X. You have been busy with the new habit for a while. The results are getting worse all the time. You have to put more energy into it than before. What is your conclusion?
여러분이 새로운 습관을 들이느라 바쁠 때, 여러분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함정이 하나 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알지 못 하면, 실패를 거듭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 설명해 보겠다. 테니스에서 여러분이 새로운 동작을 배우기를 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초기에, 여러분의 새로운 동작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까 아니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까? 여러분은 당연히 더 나쁜 결과를 얻을 것이다. 그래서 결과 곡선은 내려갈 것이고 오직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것은 수평이 되고 그러고 나서 여러분의 결과는 오래된 습관 이상으로 향상할 것이다. 자, 이제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 보자: 새로운 동작, 그것은 이전 동작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들까 아니면 더 적은 에너지가 들까? 그것은 새로운 동작이기 때문에, 물론 더 많은 에너지가 들 것이다. 잠시 후 여러분은 익숙해져, 그것은 습관이 되고 더 적은 에너지가 들 것이다. 이제 결과의 하향 곡선과 에너지의 상향 곡선 사이의 영역을 살펴보자. 여러분이 'X' 지점에 있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은 새 습관으로 한동안 바빴다. 결과는 내내 더 나빠지고 있다. 여러분은 이전보다 그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여러분의 결론은 무엇인가?